낙태는 불법이라면서 난임 시술 쌍둥이 '선택 유산'은 허용하는 정부
결혼 뒤 3년간
아이를 가지려고 백방으로 노력해온 A(36)씨는 여러 차례 난임 시술을 했다. 고생 끝에 지난해 말 시험관아기(체외수정) 시술로 세 쌍둥이를 임신했다. 기쁨도 잠시, A씨는 곧 어려운 선택을 해야했다. 병원에서 “이대로 두면 조산 위험이 높으니 셋 중 하나는 선택 유산시키는 게 좋다”고
권했다. A씨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아이 하나를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선택 유산 시술 2주 뒤 나머지 아이들마저 모두 유산됐다. A씨는
“남은 아이라도 지키려 선택한 건데 모두 잃게 됐다. 괜히
선택 유산을 시도한 것 같아 후회 막심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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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처럼
시험관아기ㆍ인공수정 등 난임 치료 시술로 둘 이상의 태아가 임신되는 경우 임신 유지를 위해 태아 중 일부를 인공
유산시키는 ‘선택 낙태’가 빈번하게 이뤄진다. 난임 시술에 의한 임신이란 점만 다를 뿐 일반적 형태의 낙태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선택 낙태는 합법적으로 할 수 있고, 일반 낙태는 불법으로 몰려 처벌받는다. 헌법에서는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된 시점부터 태아로 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저출산 극복 대안 중의 하나다.
복지부는 당시 고시를 제정해 '선택 유산'을
허용했다.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비급여)으로 할 수 있게 길을 터줬다. 난임 시술 건보 적용 방침을 1년 여전에 밝혔고, 1년 넘게 궁리한 끝에 '난임 시술 건보 적용-선택 유산 비급여 허용'을 확정한 것이다.
선택 유산은 보통 임신 8~9주에
한다. 태아의 크기는 2㎝ 정도지만 심장이 뛰고 사람으로서
모습을 갖춰갈 때다. 낙태 시점도 일반 낙태와 다를 바 없다.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대표 변호사는 “선택 유산은 환자와 태아의
안전보다 의사 편의 중심의 행위이며 (태아를 지운다는 면에서) 일반적인
낙태와 마찬가지다”라고 비판했다.
복지부 고시에 선택 유산의 조건을 '임신을
지속하면 산모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 두루뭉수리로 정했다. 선택 유산의 시점, 태아의 수, 산모의
건강 상태 등의 세부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이런 조건이 무시되기 일쑤다.
지난달 24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폐지 헌법소원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나선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배아(수정란)를 자궁에 이식할 때 임신율을 올리기 위해 3개 정도의 배아를 이식한 뒤 나중에 여러 개가 착상되면 선택 유산을 한다”며
“이런 사업에 정부가 수백억원을 지원하면서 낙태를 처벌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건보 적용을 시작하면서 난임시술기관 평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무분별한 시술을 막고 환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마련 중인 평가 지표에 임신 성공률을 넣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난임센터 의사(산부인과 전문의)는 “성공률을
높이려면 과배란을 유도해 인공수정을 하거나 시험관아기 시술 때 여러 개의 배아를 이식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다태아 임신이 많아지고, 선택 낙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선택 유산이 임신 유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전종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다태아를 임신하면 조산할 위험이
훨씬 높아지고, 산모가 임신중독증ㆍ임신성당뇨 등 합병증을 앓을 가능성이 더 커지는건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선택유산을 한다고 해서 아이를 하나라도 살릴 가능성이
커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태아 셋을 임신했을 때 임신을 지속하면 한 명이라도 구할 가능성이 97%인데, 둘로 줄이면 92%로 오히려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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